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란 탐 (문단 편집) == 여담 == * 스타플레이어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축구를 굉장히 좋아하며 홍콩 2부리그의 Sun Hei SC 라는 구단의 명예회장으로[* 담영린 외에 진백상, 임달화, 증지위, 묘교위 등의 유명 연예인이 명예 회장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팀의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으며 1982년에 [[https://zh.wikipedia.org/wiki/%E9%A6%99%E6%B8%AF%E6%98%8E%E6%98%9F%E8%B6%B3%E7%90%83%E9%9A%8A|홍콩 연예인 축구단]]을 창단하여 지금까지도 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등번호는 25번--영원히 25세니까--. 국내에도 한국의 연예인 축구단과 친선 경기를 갖기 위해 여러 차례 방한했었다. * 지한파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냉정히 말해서 후배들인 [[주윤발]], [[장국영]], [[유덕화]], [[이연걸]], [[임청하]], [[양조위]] 등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편이다. 주로 영화로 홍콩문화를 접했던 한국인들에게, 한국 수입된 영화의 주연을 별로 맡은 적 없는 알란 탐은 인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이러한 부분은 [[장학우]]와도 비슷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장학우와 마찬가지로 가수로서의 본업이 더 중심이라고 보아야 하며, 본국에서의 인기는 절대적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영화 [[첨밀밀(영화)|첨밀밀]]에서 남녀주인공이 [[등려군]] 앨범을 팔아 돈을 벌려고 하는데 손님이 "요즘 누가 등려군을 들어? 알란 탐 없어요?" 하는 장면이 나온다. 즉 80년대 당시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가수로 다른 누구도 아닌 알란 탐이 언급된 것. * 대체로 홍콩 배우들은 대륙 배우들과는 달리 [[한국 한자음]]으로 알려져 있는데 (예를 들어 성룡이나 주윤발), 알란 탐은 1980년대부터 영어 이름으로만 소개되어 왔기 때문에, 홍콩 문화 오덕조차도 "담영린"이라는 이름을 생소하게 여긴다.[* 이와 같은 경우가 [[글로리아 입]](엽온의).] * 1950년생이지만 엄청난 동안으로 80년대 중후반 많은 영화에서 40살에 가까운 나이로 20대 초반의 까마득한 후배들과 동년배로 출연하였다. 그의 영화 중 국내에 거의 최초로 개봉된 87년작 강호정에서도 자신보다 11살 어린 유덕화의 친구로 나왔으며, 조직의 보스로 나온 5살 어린 주윤발에게 '따거(大哥)'라고 부르는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2016년에 가수 김완선과 찍은 [[https://www.newspim.com/news/view/20160708000209|사진]]이 공개됐는데 여전히 동안이다. * 정치적으로는 [[홍콩 경찰]]의 공권력 사용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가하는 등 [[성룡]], [[증지위]], [[양가휘]], [[종진도]] 등과 같은 [[친중]] 성향을 띠고 있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시 시위대의 폭력적 행동을 비난하면서 양가휘와 함께 홍콩 경찰 지지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https://www.yna.co.kr/view/AKR20190814057900083?input=fb|#]] 이 사실이 홍콩안팎으로 알려지면서 비난을 받았고, 일부 팬들은 그동안 사모았던 음반과 각종 자료들을 버릴 정도로 실망감을 표시했다. 알란 탐은 본인의 SNS 계정으로 도를 넘는 공격과 협박이 이어지자 페이스북과 인스타 계정을 폐쇄했고, 현재는 웨이보 계정만 유지하고 있다. [* 아이러니하게도 해당 인물들 모두 1989년 천안문 항쟁 당시 중국의 민주화를 지지했었다. 이 중 성룡과 증지위는 다음해 홍콩 국가보안법 찬성에 서명까지 했고, 그것도 모자라 연예계 인사들에게 서명을 받아내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일종의 전향을 한 셈.] * 80년대부터 현재까지 무수한 자선 공연이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본인이 친한 연예인들과 함께 공연을 직접 조직하여 개최하기도 한다. * 매우 사교적이고 호탕한 성격으로, 나이와 연차를 따지지 않고 '내친구가 네친구고 네친구가 곧 내친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연예계에도 친구가 많은데 8살 때부터 같이 놀던 진백상, 증지위, 데뷔를 함께 한 종진도 등 위너스 멤버들, 성룡, 임달화, 유덕화, 장학우, 이극근 등 동시대 함께 활동한 대다수의 연예인들과 절친이며, 매염방, 서소봉, 진혜한 등 레전드 여자 가수들과는 듀엣은 기본이고 코믹 케미를 형성했다(누구와 엮여도 아웅다웅 남매 케미). 또한, 후배 연예인들에게는 음악계의 레전드이자 롤모델로, 할 말은 하는 '담교장'으로, 동경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극근, 다오랑, 관초요, 진혁신). * 교장이라는 별명답게 후배 양성에도 열심이다. 데뷔전 알란 탐의 팬이었던 후배 가수 이극근의 경우, 데뷔 후 본인의 후계자라고 언론에 여러번 이야기를 했으며, 콘서트도 여러 차례 직관하고 조언을 해준 것은 물론이고, 이극근이 결혼할 때 축의금을 1천만불(한화 약 15억원)을 냈으며[* 2004년 CCTV <예술인생>에서 이극근이 밝힌 사실이다. 이극근은 알란탐을 아버지처럼 따른다.], 좌린우이 콘서트의 수익금을 나눌 때도 이극근에게 70% 배정해줬다고 한다. 그리고 가수 관초요의 대부였고, 밴드 미스터(Mr.)와도 여러 차례 협연하는 등 여러 도움을 주었으나 안타깝게도 이중에 아직 알란 탐만큼 발전한 사람은 없다. 본인의 경험을 후배들과 나누는 것에도 적극적인데 2003년 TVB <홍성회> 프로그램에서는 그동안 다른 인터뷰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스타가 되기 전에 고생한 이야기, 늘 따라다니는 압박감, 파파라치와 황색언론의 무례함, 평론가들의 혹평 등 혼자서 견뎌내야 하는 말못할 힘든 사정에 대해 후배들 앞에서 본인의 경험과 생각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나 회사와는 계속 인연을 유지한다. 알란 탐이 소속된 밴드 위너스는 2023년에 데뷔 50년을 맞이했다. 단 한번의 멤버교체나 해산도 없이 이 정도로 오래 활동을 계속한 밴드는 홍콩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유례가 거의 없다. 알란 탐은 소속 음반사도 1973년 폴리그램과 처음 계약한 이후 한번도 바꾸지 않았고, 폴리그램이 유니버설로 인수되어 소속사가 유니버설이 된 이후에도 한번도 음반사나 제작진들과의 불화설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폴리그램 시절부터 음반사에서 소속 아티스트를 모아서 여는 합동 콘서트나 이벤트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심지어 폴리그램 직원들 사내 축구대회에도 출전)했다. 유니버설 레코드는 소속 가수 중 가장 기간이 오래된 알란 탐에게 "Longest Recording Career"상을 수여했다. 현재의 헤어, 코디, 매니저, 세션 밴드 등 측근 스태프들도 최소 30년 이상 함께 한 이들이다. [* 80~90년대 홍콩 연예인의 삶은 정말 빡셈 그자체였다. 신인은 신인대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쉴 새 없이 밤무대를 포함한 여러 행사와 해외 활동을 해야 했고, 알란 탐 정도의 탑급 연예인도 출연작 목록이나 음반 목록에서 보다시피 1년에 새음반 서너장은 기본이고, 국내외에서 콘서트 투어를 하고, 짬짬이 방송, 행사, 예능, 뮤직 비디오, 영화도 3, 4편 찍고, 드라마 주제가도 부르고, 해외 진출을 위해 외국어도 배우는 등 몸이 몇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많은 연예인이 이런 혹사를 못견뎌 소속사나 언론과 불화를 겪거나, 탈퇴하고 본인 회사를 차리거나, 우울증이나 성대결절 등 병을 얻거나, 연예계를 은퇴하(였다가 번복하기도 하)는 등 힘들어했다. 그래서 알란탐처럼 50년간 소속사를 바꾸지 않고, 특별한 기복이나 휴식 기간도 없이 쉬지 않고 매년 성실하게 활동한 연예인은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다. ] * [[김완선]]이 홍콩에 체류할 때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2016년에 [[불타는 청춘]]에서 오래간만에 둘이 만나는 모습이 방송을 타기도 했다. * 6부작 코지미스터리 웹드라마 [[문제적 탐정사무소]]에 경천 12시 영화제목과 함께 이름이 언급되었다. * 한국 영화 <써니>를 모티브로 제작된 홍콩 드라마 <여인구락부(女人俱乐部, 2014)>는 주인공 세 여인의 우정과 사랑, 성장의 이야기로, 이들은 80년대에 홍콩 TVB 방송국 문앞에서 알란탐의 차를 쫓아다니며 학창시절을 보낸 --그시절 흔한 --알란탐의 극성 팬으로 나온다. 그 중 한 명은 40대가 되어서도 계속 알란탐을 쫓아다니는데, 달리는 밴을 따라잡기 위해 도로에서 슬라이딩도 감수하는 용맹함을 발휘하여 알란탐의 눈에 띌 뿐 아니라, 알란탐이 나중에 방송에서 그녀와 친구들의 우정을 칭찬하는 성덕이 된다는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나온다. * 휘파람을 잘 분다. 방송뿐만 아니라 콘서트에서도 곧잘 보여준다. 94년 콘서트, 98년 위너스 콘서트, 2001년 콘서트 등에서 볼 수 있다. * 손이 예쁘기로 유명하다. 정확하게는 손가락이 길고 곧다. 그래서'미수런(美手伦)'이라는 별명도 있다. * 아들이 훈남에다가 인재이며, 명문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전공은 엔지니어링. * 나이에 비해 상당히 [[동안]]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80~90년대 홍콩 스타중 거의 최고령인 듯 하다. 1950년생: 알란 탐 1952년생: 홍금보 1953년생: 종진도, 등려군, 증지위 1954년생: 성룡, 임청하 1955년생: 주윤발 1956년생: 장국영 1957년생: 원표 1958년생: 진백강 1961년생: 유덕화, 장학우 1962년생: 양조위 1963년생: 매염방, 이연걸 인터뷰에서 나이를 물어보면 "매년 25세" 또는 "영원히 25세"라고 대답한다. 비슷한 연배 스타들이 거의 현역 은퇴 또는 반은퇴 상태인데 알란 탐만은 아직도 연창회 무대에 서고, 신곡을 발표하고, 방송에 출연하며 각종 최고령 기록을 세우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7년 대만 토크쇼 <간판인물>에서 "26세가 되면 은퇴"한다고 했다. [[분류:홍콩의 남배우]][[분류:홍콩의 남가수]][[분류:1950년 출생]][[분류:1969년 데뷔]][[분류:홍콩섬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